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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4주년 특집 / 특별 인터뷰; 북한이탈주민 서진아씨 “캐디 생활 5년 만에, 32평 집사고, 승용차 산 것이 꿈인가 싶다”

기사승인 2024.03.26  2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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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탈북, 2018년 12월 한국행....“골프는 나의 천직, 50대까지도 골프존 카운티 안성W서 일하고 싶다”

● 서울로 가, 화려한 도시를 자가용으로 달리고 싶다는 꿈이 실현되다. 
“북한에 있을 때니까, 중학교 2학년 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께서 꿈이 뭐냐고 해서 당돌하게 화려한 빌딩의 서울 거리를 내 자가용으로 운전하며 달리는 것이라고 했다가 혼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진아(32세) 씨는 실제로 한국으로 왔고, 서울 도심서 자가용을 타고 달렸다. 서울 도심을 달릴 때는 이게 꿈인가 싶다가도 그 꿈이 이뤄져 신기할 뿐이라고 한다. 아마도 지금 북한에 있으면 운전은 언감생심, 특히 여자는 운전을 못하게 한다. 지금 골프존카운티 안성W에서 5년째 캐디생활을 하며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할 때마다 신기할 뿐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몰래 한국 드라마 보면서 상상했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북한에서 처음 한국 드라마를 본 것이 ‘천국의 계단’이었고 이후 ‘가을동화’를 비롯해 많은 한국 드라마를 접했다. 친구들이랑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는 대한민국 발전상과 배우 보는 재미가 그 사춘기에는 최고의 놀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배우 ‘권상우’ ‘송승헌’을 보며 한국 남자는 다 그런 줄 알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노래를 듣는 것은 중형에 처해지지만 다행히 그 당시 북한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 문화 유입의 심각성을 몰랐기에 드라마와 안재욱의 ‘친구’ 같은 한국 노래를 즐길 수 있었다.  
서진아씨는 다행히 아버지가 중국과 무역업을 해서 드라마 외에도 이미 삼성, LG제품 등을 접하며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역업을 해 다른 집보다는 형편이 괜찮았지만  아무리 사업을 잘해도 버는 것 보다 당에 바치는 것이 많아서 늘 생활이 궁핍했다고 한다.


● “기회가 오면 대한민국으로 가라”던 아버지의 유언이 현실이 되다.
서진아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길주이며 탈북 전까지 간호사를 비롯해 혜산에서 귀금속 밀수까지 하며 살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봐야 돌아오는 것은 궁핍한 생활이었고 아버지 역시 무역일을 하다가 밉보여 오랜 고문을 당한 끝에 돌아가셨다. 서진아 씨는 더 이상 여기서 굶어 죽을 수 없다며 2014년 중국행을 감행 한다.
“제가 먼저 중국으로 넘어가 장춘에서 양 꼬치 식당에서 일했어요. 이후에 엄마가 탈북 했고 여동생이 중국으로 왔어요. 그런데 그때 18살이던 동생이 중국 어디론가 팔려갔고 엄마도 북송되었어요”
서진아씨는 2018년 한국행을 결심하고 12월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으로 왔다. 아버지의 유언이 한국으로 오는데 큰 동기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여긴 희망이 없다. 기회가 되면 한국으로 가라”고 했다. 그는 하나원서 교육을 받고, 서울로 배정 받았지만 주춤거릴 시간이 없었다. 바로 일을 찾아야했고 명동 쇼핑몰, 백화점 일, S기업 유도원 등의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는 육체적인 힘듦은 없었다. 오히려 북한에서 왔다고 무시당하고 따돌림과 안 해도 되는 일까지 해야 했다. 그래도 일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돈도 벌 수 있어 남보다 더 먼저 일찍 출근하고 하루 몇 시간씩 자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 골프존은 나의 ‘고향이자, 은인이자, 미래의 삶’인 곳이다.   
“직업 설명회에서 골프장과 캐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골프존 카운티가 진행하는 ‘북한이탈주민 캐디 양성’ 교육을 알게 됐죠. 처음엔 모르는 영어와 복잡한 룰 때문에 망설였지만 면접 당시 ‘버텨라 그리고 살아남아라’며 계란프라이 한 개를 올려주던 박세하 대표의 따듯함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평생 나의 직업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골프존을 만났고 북한이탈주민 20명과 함께 캐디 교육을 받았다. 그중 14명이 수료하며 캐디 활동을 시작했지만 많은 동료들이 못 버티고 그만뒀다고 한다. 서진아씨는 아직도 캐디 첫날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떨리고, 겁나고, 어색했지만 솔직하게 오늘 첫 캐디로 나왔다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다들 숨기고 싶어 하는 “저는 북한에서 왔습니다”며 먼저 말씀드렸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네 분의 골퍼께서 잘 협조해주고 배려와 용기를 줬다. 그 인연으로 지금도 그분들은 안성W를 오면 서로 반갑게 인사도하고 농담도 나누고 있다고 한다. 서진아 씨는 캐디일이 정말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인생에 기회가 3번 찾아온다는데 그 한 번이 ‘골프존 카운티’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고 열심히 인사 잘하고, 미소 짓고, 어떤 상황을 인정하면 손님들은 다 좋아하신다. 그리고 볼 못 찾으면 “죄송하다, 더 열심히 찾겠다”고 하면 이해해 주신다. 물론 가끔 진상 골퍼 분들도 있지만 북한에서 고생하고, 중국에서 천대 받으며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탈출해서 온 것에 비하면 오히려 사치라고 한다. 

● 엄마의 북송 소식 듣고 죽을까 했지만…지금은 5년 캐디 하며 집과 차와 명품백도.
“정말 캐디일이 너무 좋고 아침이 기다려질 정도로 좋아요. 매일 2팀 라운드를 할 만큼 열정이 솟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오니 좋았어요. 그러던 2021년 어느 날 엄마가 북송되었다는 소식을 고향으로부터 들었어요. 그날 코스 진행을 어떻게 했는지 모를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손님에게 티내려하지 않고 잘 마친 뒤에 경기과에 가서 사실대로 말했어요. 며칠 쉬라고 배려해주는데. 그냥 서해바다로 가서 죽으려도 했고 통곡하며 울다가 집으로 돌아와 그 다음날부터 또 일에 매달렸죠.”
여동생과 엄마는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는 희망과 위안하며 골프장으로 갔어요.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며 일에 매진하다보니 슬픔을 잊을 수 있었어요. 5년 간 열심히 일해 32평 집도 사고, 고급 승용차도 사고 명품백도 몇 개 살 수 있었어요. 신용등급도 처음 6등급에서 지금은 1, 2등급이 됐으니 부자된 기분이고 내 차로 출퇴근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정동하의 ‘비상’을 들으면 감동과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마침 정동하 의 사인 CD를 선물하자 서진아 씨는 어린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 탈북민 동료에게 “명품이 싸게 보일 때까지 우리 진짜 열심히 뛰자”
서진아 씨는 후배 교육생이 오거나 동료가 힘들어 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힘내자. 우리 명품이 싸게 보일 때까지 진짜 열심히 일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이제 명품도 한, 두 개 정도 구입할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북한에 있으면 꿈도 못 꾸고, 그 돈이면 1년간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기에 당연히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열심히 일한 만큼의 보상 심리로 명품백 하나 갖는 것은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5년 동안 지금까지 반나절 조퇴를 빼놓고는 단 한 번도 결근 한 적이 없을 만큼 성실과 애정으로 안성W골프장에 다니고 있다. 오히려 이런 좋은 기회를 준 골프존 회사에 감사드리며 50세가 넘어서도 자르지만 않는다면 계속 다닐 것이라며 의지를 내비친다.

● 한국에서 제게 이런 좋은 기회를 줬으니, 앞으로는 어려운 이웃에 힘이 되고 싶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희망도 없던 본인에게 한국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줬고 안정된 직업과 휴식처를 장만했으니 이젠 함께 도우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골프존 회사와 박세하 대표를 비롯해 서주원 본부장, 성지현 팀장 등 모든 동료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표하고 싶단다. 그는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하고 그 행복을 가져다 준 대한민국에서 더 열심히 살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서진아씨는 가슴에 묻어 두고 있는 엄마와 동생은 열심히 살면서 인연이 닿고, 기회가 되면 모시고 와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며 눈가의 촉촉함을 애써 감췄다.    

 

골프존 카운티 북한이탈주민 캐디양성 사업은 어떤 것인가

사회공헌 1위 기업 골프존은 지난 2014년 남북하나재단과 ‘새싹캐디 교육 MOU’를 맺고 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정착과 지원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힘써오고 있다.
2015년 1기 4명을 시작으로 2019년 6기 20명, 2024년 11명을 포함해 10년 간 129명을 교육시켰고 그중 88명이 수료해 골프장 캐디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수도권에 국한되지 않고 영남권에 위치한 사업장에서도 교육을 받아 캐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 캐디가 되기 위해서는 8주간 실무, 4주간 현장교육, 캐디전문지식, 한국의 문화, 고객 응대 에티켓, 억양 교정, 한국사회 융화 내용을 이수하게 된다.
골프존은 10년간 북한이탈주민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다양한 지원을 통해 지난 2021년 통일부장관 표창 수상을 한 바 있다.

 

이종현 국장 huskylee12@naver.com

<저작권자 © 레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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